06

 

합궁이라니!!!”

 

태형이 제 볼을 감싸 쥐고 소리쳤다. 머릿속이 과부화 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합궁! 합궁! 합궁이라니! 그러나 그런 태형의 태도를 설렘 내지는 기대감으로 해석한 듯, 태형 앞의 상궁은 그런 태형을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리도 좋으실까. 그런 상궁을 알면서도 차마 그거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없는 처지의 태형은 그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이 속내를 어디 가서 털어놓나!!

우리 합궁일 정해졌대요.’

 

정국은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방을 나갔고, 태형은 잠시 제 귀를 의심하여 그대로 앉아 입을 벌렸다. 합궁. 합궁合宮. [명사] 남녀가 성교함. 또는 그런 일. 특히 부부 사이의 성교를 이르는 말. 그러니까, 전정국도 알고 있었던 거다. 합궁일을 조정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니, 정국이 먼저 그 화제를 꺼냈었던 것도 같았다. 그 땐 그냥 먼 훗날의 일이겠거니 하고 넘겼었는데. 아니 근데 그걸 왜 전정국한테 먼저 말해!! 나한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정도는 줘야지!!!

 

…….”

마마?”

그래서 합궁일이 언젠데?”

 

태형이 푹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사실 태형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정국에게 먼저 말하는 게 맞겠지. 정국도 저와 다름없는 합궁의 당사자일 뿐 아니라 왕이기까지 하다. 왕이 제일 먼저 알지 않으면 누가 제일 먼저 알까. 그러나 괜히 억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태형은 멍한 머리를 다시 정리했다. 그래. 말이 합궁이지,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사실 합궁이 걱정이었던 것도, 왕이 제 정체를 알까봐서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도 없다. 태형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같이 자는 것뿐이다, 한두 번 같이 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어제도 같이 잤으니까 특별히 의미부여 할 필요는 없다. 태형의 묘하게 결연해진 눈빛에 마마께서 정말로 굳게 다짐하셨나 보다 생각한 상궁이 살짝 미소 지었다. 물론, 태형이 다짐을 한 건 맞았다. 그게 상궁이 생각하는 다짐과는 오조 오억 광년쯤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사흘 후입니다, 마마.”

, 사흘…….”

 

왜 이렇게 가까워……. 태형이 조용히 읊조렸다. 사흘이면 3일 후. 마음의 준비만 해도 모자란 시간이다. 아무리 의연하려 해도 자꾸만 떨리는 손에 태형이 라마즈 호흡을 했다. 사실 라마즈 호흡이 뭔지 모르지만 그냥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단 소리다. 아무튼 그런 태형의 말에 상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얼마 안 남았지요. 그러니 오늘부터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준비?”

. 튼튼한 원자 아기씨를 회임하기 위한, 또 전하께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준비요, 마마.”

회임최선의 모습…….”

 

하나같이 정말받아들이기 힘든 말들뿐이네. 태형이 머리를 짚었다. 그래. 그까짓 준비하는 척쯤이야. 어차피 진짜로 할 것도 아닌데. 제 눈앞의 펼쳐진 운명을 수용하기로 결심한 태형이 푹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그래서, 뭐부터 해야 하는데?”

 

*

 

마마, 똑바로 보십시오!”

, 아니…….”

 

태형은 자꾸만 저도 모르게 붉어지는 얼굴을 어찌할 수가 없어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의연하려 해도 차마 제 앞에 놓여진 책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태형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합궁 준비라 해서, 회임에 좋은 약이나 먹고 목욕재계나 할 줄 알았던 태형은 제 눈앞에 펼쳐진 의외의 준비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이런 걸 왜 알려주는 건데!

 

회임에 가장 좋은 자세는 주상 전하께오서,”

아니, , 잠깐만!”

마마벌써 다섯 번째이옵니다!”

 

그러니까 태형은 지금, 10대 이후 다시는 마주할 일 없을 줄 알았던 그 교육. 이미 정규 교육 뿐 아니라 시청각 자료를 통해 비정규 교육까지 모두 마스터한 지 오래인 그 교육. 이름하야 성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 나이에, 이런 곳에서 성교육을 다시 받게 될 줄이야. 그것도 개인 과외로! 태형은 입술을 꼭 물었다. 이런 그림 따위가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과 소리로 이미 다 알고 있는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형은 마치 이런 행위(?)는 처음 보는 것처럼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Safety Sex, 노콘 노섹!을 필두로 하는 교육만을 받아 왔던 태형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임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은 처음 받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렇게 적나라한 그림과 언어를 사용하면서. 11, 여자에게.

 

, ,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굳이 이렇게 배워야 할까?”

마마. 튼튼한 원자 아기씨를 회임하기 위해서는 기일 뿐 아니라 마음가짐과 자세 또한,”

, 에헤이-”

 

태형은 황급히 상궁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뒤에 나올 엄한 말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10분여 전, 상궁이 살짝 미소 지은 얼굴로 대충 봐도 두꺼워 보이는 책을 들고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했던지라, 태형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무방비한 상태의 태형에게 전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으로 운을 뗀 상궁은 옆에 살짝 붙어 앉더니 대뜸 태형에게 헐벗은 두 남녀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춘화春畫. 태형은 조선의 색체 표현이 이렇게 사실적이었는지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 훌륭했다.

 

전하께서 마마의 위로 올라타-”

아 제발…….”

 

시발, 시발, 시발! 태형은 울고 싶어졌다. 정상위, 후배위. 이런 체위들이 조선 시대부터 있었구나. 태형은 입 안쪽 여린 살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튼튼한 원자 아기씨를 회임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정상위라는 것까지 TMI로 알게 된 태형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도 펄쩍펄쩍 뛰었다. 아주 조금 있으면 애무하는 법까지 나오겠어!!! 태형은 제 손에 집히는 베개를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이게 뭐라고, 야동을 접한 10대 소녀처럼 부끄러움을 타느냐는 말이다. 이미 다 알고, 본 것들인데. 그건, 태형이 자꾸 상궁의 말을 들으며 떠올리게 되는 머릿속 그림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얼굴. 내 위로 올라타는 전정시발!!!!

 

알겠습니다, 마마. 그럼 조금 더 쉬운 것부터 하도록 하지요.”

, 그래.”

 

태형은 살짝 숨을 내쉬었다. 쉬운 거. 그래. 아무리 흘려들으려 해도 자꾸만 생생하게 서라운드로 플레이되는 영상에 태형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 감으니까 더 선명하게 보여, 미친아. 잠시 그런 태형을 응시하던 상궁이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춘화집을 스르륵 넘겨 초반 부분을 펼쳤다. , 마음가짐 같은 게 나오려나. 태형은 슬쩍 눈동자를 굴려 춘화집으로 시선을 옮겼

 

옥경(玉莖)을 입에 담으실 때는, 이를 사용하지 말고 잇몸과 입술로 다정하게

, 잠깐만요1!!!!”

입 안을 향기롭게 하여 혹여나

잠깐만! , 그만하,”

전하께오서 옷고름을 풀어 주실 때는 그저 가만히 있지 마시옵고

 

제발 잠깐만!!!!!!!!!!!!!!!!!!! 그러나 태형의 인지 부조화, 혹은 게슈탈트 붕괴, 혹은 멘붕, 어쨌든 태형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다 못해 산산이 가루가 되어가거나 말거나 상궁은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는 듯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태형이 혹여나 눈을 피할세라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옥경이 무엇인지 모르는 태형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무리가 없도록 시각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

 

영혼까지 털린 느낌, 혹은 영혼의 순결을 뺏긴 느낌.

 

이라고, 태형은 지난 사흘을 회고했다. 첫 날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이어지는 상궁의 표현들로 시작됐던 준비는 하루가 지날수록 그 강도를 높여 가며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나름의 완급 조절도 했었던 거다. 태형에겐 처음부터 헬게이트 난이도였어서 그렇지.

 

기침하셨습니까, 마마.”

 

태형이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은 제 손을 가볍게 마사지하며 해사하게 웃는 상궁의 얼굴이었다. 이제는 놀랄 힘도 없는 태형이 며칠 새 핼쓱해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궁은 태형의 말에 조금 더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날이 밝았습니다, 마마.”

 

그래나의 이 고생도 오늘로 끝이 나고 말이지. 태형이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삼키며 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상궁을 쳐다봤다. 이제 태형은 제 신체의 보안에 대해서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어차피 중요 부위만 들키지 않으면 됐으니까. 합궁날이 결정된 후부터, 자꾸만 제 몸을 만지려 드는 상궁들에게 사지는 건드려도 좋으니 몸통을 포함해 무릎 위, 팔꿈치 위로는 절대, 손도 대지 않을 것으로 합의를 봤던 것이다. 물론 상궁들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인데!’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는 상궁들에게 태형은 당황한 나머지 내 몸은 오직 전하만이 만질 수 있다!!’고 외쳤고 상궁들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아무 말이나 하게 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태형은 이런 말을 한 것은 전정국에겐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가져갈 것이라 다짐하며 제가 조선에 떨어진 이후 얼마나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됐다.

 

연습했던 것들은 모두 기억하고 계시지요, 마마?”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상궁의 말에 태형은 다시 한 번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다마다. 지난 사흘간 하루 종일 그것들만 연습했는데. 어차피 실전에는 하나도 쓸모없겠지만.

그러니까, 태형은 지난 사흘 간 시각 자료들을 통한 간접 수업 뿐 아니라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중전의 몸으로 타인과 그런 것들을 실습해 볼 수는 없었으니, 그 비슷한 것들로. 태형은 잠시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치스러운 기억에 입술을 깨물었다. 살다 살다 방중술을 연습해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의. 태형은 그간 연습했던 것들을 저도 모르게 떠올렸다.

걸을 때 발뒤꿈치 들고 걷기. 이거 정도야 별 거 아니지, 하고 생각했던 태형에게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의 효능을 태형의 귀에 꽂아 넣는 상궁의 목소리. ‘허벅지 안쪽 근육과 회음부 쪽 근육이 긴장되어 성감을 높여 줄 수 있으며 전하에게 보다 큰 만족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태형은 잘 걷다 말고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려야 했다. 그뿐만이랴. 금가루가 섞인 소금으로 양치질, 누워서 천을 덮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얼음물을 배꼽으로 받기. 그 중에서도 가장 태형의 항마력을 시험했던 것은 혀로 연시 핥기였다. 이건 상궁이 따로 설명을 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태형은 그 순간 가장 쉽고 간단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했었다.

 

소리를 어떻게 내야 전하를

알고 있어, 제발 그만해…….”

 

태형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서 얻은 정보와 지식들은 다시 현대로 돌아간다 해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말이다. 씻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린 사흘간의 준비에 태형은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난 이제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어…….

 

오늘은 이제 옷감을 고르시고, 장신구를 고르셔야 합니다. 어서 기침하시지요.”

알겠어…….”

 

태형이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그 날이었다. 자신과, 정국의 첫날밤 아닌 첫날밤.

 

*

 

안 돼, 안 돼, 안 돼!”

오늘은 저도 절대로 양보 못 합니다, 마마.”

 

태형은 단호했으나, 상궁도 오늘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듯 단호했다. 태형은 입술을 물었다. 옷감을 고르고, 장신구를 고르고. 마사지를 받고. 한 번 더 중전의 역할에 대해서 세뇌 교육을 받고. 오전 오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준비를 마치고 나니 날은 어느덧 어둑해져 푸른 끼가 돌았다. 이제 정말 그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태형은 제법 깜깜해진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니 중얼였다. 오늘이 대망의 그 날이라 그런지, 상궁은 더 이상 엄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마 태형이 내성도 없이 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질겁하니 긴장을 풀라는 작은 배려인 듯 했다. 하지만 정작 복병은 지금부터임을, 태형은 깨달았다. 평소에는 태형의 명령대로 목욕 시중을 들지 않았던 상궁이, 오늘만큼은 반드시 목욕 시중을 들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안 돼. 이건 진짜 안 돼.”

마마. 마마께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전하의 손이 닿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제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알아서 할게!”

 

어차피 걔는 오늘 밤 내 몸에 손도 안 댈 거라고……. 태형은 답답한 속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낭패였다. 순순히 혼자 목욕을 하게 해 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상궁은 생각보다도 더 강건했던 것이다. 태형은 소복만 입은 채로 치맛자락을 꽉 말아 쥐었다. 하지만 태형도 절대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태형보다도 상궁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더 안 되는 일이었다.

 

마마. 시간이 촉박하옵니다. 벌써 날이 어두워 졌사온데,”

그러니까 혼자 들어가겠다고. 여태까지 잘 했잖아!”

오늘은 평범한 날이 아니지 않습니까!”

 

태형과 상궁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전쟁이야. 태형은 상궁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결했더라. 그러나 곧이어 떠오른 그 날의 일에 태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타이밍 좋게 정국이 나타나서 무마됐었지. 그러나 같은 행운을 두 번 바랄 수는 없다. 그것도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오기로 한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고. 제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꿈에도 모를 정국은 왕이 해야 할 준비로 바쁘겠지. 태형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냥 이대로 그때처럼 밖으로 도망쳐?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게다가 오늘 같이 왕과 왕비의 합궁으로 온 궁궐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날에 왕비가 소복 차림으로 교태전을 뛰쳐나갔다간 뒷일이 어떻게 될지 뻔했다. 중전의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소문이 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는 방법에 태형이 미간을 좁혔다.

 

마마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서 계실 겁니까. 이러다가 정말,”

꺄악!”

 

상궁이 다시 한 번 더 태형을 다그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밖에서 갑자기 들린 어린 궁녀의 비명소리에 태형과 상궁의 시선이 문가로 향했다. , 뭐야?! 태형이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교태전은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깊숙이 있는 곳이었다. 궁녀가 저런 식으로 비명소리를 낼 일이 없는, 아주 안전한 공간이란 뜻이다. 게다가 오늘은 왕이 교태전으로 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철저히 해 놓았을 텐데. 태형과 상궁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상궁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 의아함과 약간의 불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태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태형과 상궁이 있는 교태전 내에서도 가장 깊숙이 있는 욕실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젖혀졌다.

 

, 전하!”

전ㅈ,”

 

그리고 나타난 인영에, 태형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제 앞에 있는 상궁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 문을 열고 나타난 인영은, 여기까지 서둘러 달려온 듯 얼굴이 살짝 발개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전정국이었다. 태형과 눈이 마주친 정국은 하,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하는 것 같은 느낌의 그 한숨에 태형이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왕이 오기로 한 시간까지는 2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시간에 늦었다 해도, 왕이 교태전까지 뛰어 올 일은 없었다. 이 궁궐 안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것이 전정국, 그러니까 왕이었으니까. 의외의 인물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상궁이 급히 고개를 숙였고 태형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 전하. 어떻게 여기…….”

.”

 

잠시간의 침묵 후에 상궁이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을 꺼냈고 정국이 그에 조그맣게 감탄사를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벌써 온 거지? 그것도 신하들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었으나 꾹꾹 눌러 참은 태형이 정국의 대답을 기다렸다. 왕이 이렇게 직접 달려올 정도면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나…….

 

중전이 보고 싶어서…….”

……?”

! , 아니. 잠깐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그리고 이어진 대답에 태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그건 상궁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제가 들은 말이 환청인가를 의심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상궁이 되물었고 정국은 민망한 듯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저게 무슨 말이야? 보고 싶어서 달려왔다니 그게 무슨……. 태형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정국이 세차게 열어젖힌 문 밖에 서 있는 궁녀들도 방금 제가 들은 말이 환청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어명은 어명이니. 상궁은 나가기 직전에 놀란, 그러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눈으로 태형을 살짝 돌아봤고 태형은 저도 모른다는 의미로 눈을 깜박였다. 상궁이 문을 닫고 나가고, 방 안에는 소복만 입고 있는 태형과 정국 둘만이 남았다. 태형은 입을 벌리고 눈을 깜박였다. 너 지금 뭐하냐?

 

아니, …….”

……?”

합궁 날에는 상궁들이 꼭 목욕 시중을 들어 준다고 해서,”

?”

그게 관례라고, 지금쯤 중전마마께서도 준비 중일 거라고……. 근데 형은 들키면 안 되니까.”

 

주위에 혹시 들릴까 싶어 두리번거린 정국이 민망한 듯 두서없이 말을 뱉었고 태형은 그런 정국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니까 지금……. 태형은 정국이 뱉은 말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되짚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정체가 들킬까 봐 그게 걱정돼서 준비하다 말고 여기까지 뛰어 왔다는 소리인 건가?

나야 상관없지만, 형은 들키면 안 되잖아요.”

 

여전히 민망한 듯, 낮은 목소리로 정국이 말했다. 태형은 그대로 가만히 멈춰 서 그런 정국을 쳐다봤다. 이거 좀 이상하긴 한데, 그러니까, 되게 당연한 거일수도 있는데. 그냥 여럿도 아니고 단 둘만 조선에 떨어진 거니까 서로 돕는 게 맞는 건데. 이런 상황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너무 이상한데.

 

, 전하, 소인이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오늘 중전의 목욕은 내가 거들어도 되겠느냐.”

? 전하! 어찌 그런……. 감히 어떻게…….”

 

나 왜 설레지?

 

태형은 빨라지고 있는 제 심장 박동을 느끼며 멍하니 정국을 쳐다봤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정국의 시선이 지금 저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어떻게 핑계를 대야 상궁들이 태형의 목욕 시중을 들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듯, 정국은 살짝 찌푸린 미간을 하고 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정국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면, 이유 없이 빨개진 제 얼굴을 봤을 테니까. 태형은 두근두근 뛰는 제 심장께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댔다. 대체 왜…….

 

, 전하! 그래도…….”

중전이!”

…….”

그런 말도 하지 않았느냐!”

?”

중전의 몸은 나만 만질 수 있다고!”

……!”

 

라고?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태형은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너 방금 뭐라그랬그러나 태형이 그대로 굳어 버렸거나 말거나, 정국은 조근히 말을 이어 나갔다.

 

중전의 뜻이 그렇다면, 나만 중전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

, 황공하옵니다, 전하!”

 

태형이 그렇게 혼자 하겠다 할 때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정국의 말 한 마디에 상궁들은 바로 수긍했다. 그러나 그런 상궁들의 태도에 태형이 배신감을 느낄 새도 없이, 태형은 지금 온통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로 상궁의 말을 듣고 살짝 웃으며 저를 돌아보는 정국의 얼굴. 태형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 , !

 

, 그거, 어떻게, 어디서 들었어?”

? 뭐가요? 그나저나 형. 이제,”

, 내가, 내 몸 너만 만질 수 있다고, ,”

, 그냥 신하들이 말해주던데요. 그건 그렇고 이제 씻어요, .”

아니, , !!!!”

걱정 마요. 안 볼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태형은 말을 채 잇지 못한 채로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태형이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마치고, 정국은 뿌듯한 얼굴로 살짝 웃으며 뒤를 돌았다. 태형은 탕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한 채로, 정국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 그 상태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태형은 만약 제 손에 지금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면. 그래서 초록창에 검색을 해 볼 수 있었다면.

 

시바아아알……!”

 

가장 빠르고 고통 없이 죽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검색했을 거란 뜻이다.





*옥경(玉莖·임금의 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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